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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이방인

월$급루\팡 @dnjfrmq_soshk 

* 현대AU, 윶있윻(25) X 윶없옒(20)입니다.

 

 

 

 

  형과 저만의 공간에 이방인이 눈바람 부는 겨울을 몰고 갑작스럽게 발을 디뎠다. 8월 초, 한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유현아, 기억나지? 예림이.”

 

 

  한유진의 말을 들으며 한유현은 난데없이 나타난 이방인을 내려다보았다. 저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는 여자아이의 입술은 약간 찢어져 있었고 뺨에는 작은 생채기가 나 있었다. 확실히 어딘가 낯익은 구석이 있었지만, 그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예림이’ 와는 거리가 상당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나 겨울을 빚은 듯 괴괴한 표정이나 늘어진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사늘히 가라앉은 눈은 더욱 그랬다. 한유현은 낯선 위화감을 느꼈다. 걔는 저런…. 한참 대답이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한유진을 보고서야 한유현은 생각을 접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

 

 

  형제의 부모님은 한유진이 15세, 한유현이 10세일 때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런 형제를 몇 년 간 도와주고 챙겨준 사람들이 바로 부모님의 친우였던 박예림의 부모였다. 집이 가까운 탓에 박예림은 형제의 집을 제집마냥 드나들었고, 박예림의 부모가 없는 동안 아이를 돌보는 것은 거의 일상이었다. 그 때의 박예림은 저보다 5살이나 어린 것이 건방지게 당돌한 구석이 있고, 시끄럽고, 사람을 성가시게 만드는 꼬맹이였다. 그럼에도 여름의 화신인 마냥 덥고 쨍한 미소나 야- 한유현! 하며 저를 부르는 높은 목소리, 신비한 것을 보듯 둥글게 반짝이는 열을 가득 품은 눈동자 같은 것들이 아주 조금은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다.

 

 

  비극은 재난처럼 갑자기, 재앙처럼 거세게 12살 여자아이를 덮쳤다. 8월 초, 태풍이 상륙하기 직전, 한유현과 박예림이 TV 속보를 보며 아이스크림을 사오네 마네 티격태격 하고 있을 때, 한창 일하고 있어야 할 한유진이 급하게 집으로 들이닥쳤다. 그렇게 새파랗게 질린 형의 얼굴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래 처음이었다고 한유현은 사유한다.

 

 

  박예림의 부모가 교통사고에 휘말려 사망했다. 장례식장에서 텅 빈 얼굴로 부모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던 박예림의 모습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신경을 긁었다. 나중에 뭐라고 말을 걸어야할지 고민했지만 그 고민이 무색하게도 이후로 형제는 박예림을 볼 수 없었다. 삼촌이라는 작자가 박예림을 돌보기로 했다는 소식만 짧게 들었을 뿐이다. 형제가 사는 빌라 옆에 자리 잡은 박예림네 단독주택은 순식간에 정리되었고 겨울을 피해 도망가는 가을의 뒤꽁무니 즈음에 팔려버렸다. 한유진은 박예림을 보지 못해 제법 아쉬워하는 눈치였으나 한유현은 무덤덤했다. 단지 가끔 도지는 후유증 같은, 허전함과 약간의 역정 같은 것에 조금 시달렸을 뿐이다.

 

 

  그렇게 7년이 지났다. 한유현은 하루 빨리 졸업하고 취직해서 형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일념 하에 군 전역 후 칼복학, 휴학 한번 없이 달리고 있었다. 그 날 역시 평범한 날이었다. 태풍이 북상한답시고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펄쩍 뛰며 반대하는 한유진에게 방학동안만 하겠다고 사정사정하여 겨우 하게 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한 날. 현관에 낯익은 형의 구두와 함께 낡을 대로 낡아 바닥이 떨어지기 일보직전인 운동화가 낯설게 자리하고 있었다. 의문을 느끼며 집 안으로 들어선 한유현이 거실에서 마주한 익숙한 형의 얼굴과 불편한 기색으로 카우치에 앉아있는 낯선 이방인의 존재. 한유현은 그 풍경을 보며 물설은 위화감이 갉아먹듯 발끝부터 치고 올라옴을 느꼈다. 한유현은 발뒤축에 힘을 주고 바닥을 꾹 눌렀다. 마치 그리 하면 그 생소한 감각이 눌려 사라질 것처럼.

 

 

  한유진은 박예림이 이 집에 오게 된 경위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저 내가 예림이를 데리고 있기로 했다, 너도 이해해주고 예림이 잘 대해줘라, 라고만 말 할 뿐이었다. 당사자인 박예림은 애초에 입을 열지도 않았다. 한유현은 그러려니 넘어갔다. 형이 하는 일에는 항상 응당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고, 애초에 그는 한유진을 제외한 타인에게 기본적으로 무심했다. 그의 불만은 다른 곳에 있었다.

 

 

  첫 몇 달은 살얼음판 위에 선 듯 위태로웠다. 한유진의 말에 따라 최대한 잘 봐주려 했지만 한유현은 보면 볼수록 박예림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난데없이 돌아와 저와 형 사이에 자리를 튼 것도, 그런 주제에 좀처럼 거두지 못하는 어색함과 불신도, 세상 다시없을 정도로 냉한 표정을 짓는 주제에 항상 눈치를 살피는 것도,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기대도 안한다는 양 구는 태도도, 그 까끌한 눈빛도, 저기요- 하며 이따금 저를 부르는 목소리도 그 되도 않은 존댓말도. 아예 없는 취급을 하려해도 입안에 난 작은 상처처럼 신경을 건드렸다. 먼 기억 속 여름의 얼굴을 한 여자아이와 눈앞에 있는 이 사이의 거리감이 스스로도 불가해할 정도로 거슬렸다. 그래서 박예림에게 ‘이방인’ 이라 확고한 꼬리표를 붙이고 부러 날을 세워 위압적으로 굴었다. 그럴 때 마다 네, 하며 조용히 들어 넘기는 모습에 유치하게도 한유현은 더 기분이 나빠졌다.

 

 

  그리고 세 달이 지난 11월의 어느 날, 절대 바란 일은 아니지만, 박예림에게도 한계가 찾아왔다.

 

 

  “아, 씨발 스무 살 되자마자 나갈 거니까 그만 좀 해!!”

 

 

  벌겋게 눈을 치뜨고 씩씩거리면서도 제가 뱉은 말에 스스로 놀라 급하게 입을 막은 박예림과 예상치 못한 반응에 잠시 말문이 막힌 한유현 사이에 한유진이 끼어들어 사태를 수습했다.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기세의 박예림을 붙들고 어르고 설득하느라 진땀을 빼는 한유진의 모습을 한유현은 말없이 바라만 보았다. 이 난리판에, 항상 한겨울 호수처럼 얼어붙어있던 눈에서 들끓는 열기를 발견한 것이 묘하게 만족스러웠다곤 죽어도 말 못한다. 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미약한 희열을 꾹 누르며 한유현은 가만히 손을 들어 자신의 입가를 가렸다.

 

 

*

 

 

  문득 눈을 떴다. 1년 전, 낡은 후드 점퍼에 펑퍼짐한 교복치마를 걸친 여자아이가 처음 이 집에 온 날의 꿈을 꿨다. 정말 뜬금없다 생각하며 한유현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옆으로 전공서적이 뒹굴었다. 언제 잠든 거야. 한유현은 눌린 뒷머리를 쓸어 정리하며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3시 37분. 그러고 보니 형 오늘 회식이랬나. 나중에 전화 한 번 해야겠다. ‘불금에 회식이라니 날짜 찍는 것도 꼭 지같이 찍어요 망할 성현제-!!’ 라며 불을 뿜던 한유진이 떠올랐다. 박예림은… 아르바이트 갔겠네.

 

 

  지난 1년 간, 한유현과 박예림 사이엔 많다면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에 맞춰 호수 위 살얼음 같던 그들의 관계도 차츰 변했다. 박예림은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하면 꽤 달라졌다. 이 집에서 생활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조금은 던 듯 했고, 가없이 괴괴한 겨울의 얼굴에 점차 과거 여름의 흔적이 묻어나왔다. 가끔 까칠하게 대들 때면 짜증이 나면서도 한편으론 조각을 맞춘 듯 마음이 편했다. 한유현도 나름 변했지만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다. 여전히 박예림을 이방인이라 생각했고, 불퉁한 태도로 대했으나 더 이상 위압적으로 굴지 않았고 오히려 배려 비슷한 것을 언뜻 내비치기도 했다. 이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변화들 속에서, 한유현은 언제부턴가 이질적인 무언가를 흐릿하게 느끼고 있었다.

 

 

  한유현은 한숨을 쉬며 방을 나섰다. 세수 좀 하고 찬물 마시고 저녁때까지 읽던 책을 마저 읽을 심산이었다. 거실로 나오니 에어컨의 싸한 인공바람이 그를 감쌌다. 좀 끄고 가지. 에어컨을 끄고 현관을 지나치다 문득 돌린 시선에 하늘색 스니커즈가 걸렸다. 한유진이 박예림에게 처음 사준 것이었다. 박예림은 주로 저것을 신고 다녔다. 오늘은 다른 걸 신고 갔나 싶었지만 현관 한 켠에 다른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한유현은 박예림의 방 문 앞으로 다가가 살짝 두들겨보았다. 반응이 없다. 슬쩍 열어보니 침대 위에 몸을 뉘인 등이 보였다.

 

 

  “…박예림?”

 

 

  안 갔어? 조용히 불러보았으나 반응이 없었다. 설마 늦잠인가 싶었지만 박예림은 그런 부분에선 칼 같았다. 가능성 하나를 머릿속에서 지운 한유현이 박예림에게 다가갔다. 야, 일어나. 어깨를 살짝 흔들어보아도 반응이 없다. 문득 손끝으로 올라오는 체온이 심상찮음을 깨달았다. 평소보다 발간 얼굴과 목덜미, 땀으로 피부에 들러붙은 검은 머리칼이 눈에 들어왔다. 내뱉는 숨이 뜨거웠다. 한유현은 그제야 이맘때 즈음, 부모의 기일 전후로 박예림이 지독한 감기몸살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계속되는 연례행사라고 말하던 덤덤한 목소리가 스쳐갔다.

 

 

  일단 웅크리고 누운 몸을 똑바로 돌려 눕혔다. 아르바이트에 가려고 했는지 티셔츠에 슬랙스를 입은 차림새였다. 흐트러진 긴 머리칼 중간 즈음에 묶여있는 머리끈이 눈에 띄었다. 올 해 박예림 생일 때 한유현이 옷과 함께 선물로 준 것이었다. 고맙다고 말하던 목소리가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조심히 풀어내는 손끝에 조금 열이 올랐다. 머리끈을 침대 머리맡에 올려두고 열이 오른 손을 말아 쥐었다. 땀을 닦을 물수건이랑, 약과 물을 가져오자. 집에 감기약이 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돌릴 때 으…, 작은 신음소리가 울렸다. 다시 돌아보니 박예림이 열에 풀린 눈을 느리게 깜빡이고 있었다.

 

 

  “아, 늦었어….”

 

 

  박예림은 힘없는 손으로 침대 가장자리에 아슬하게 걸쳐진 휴대폰을 잡아 확인하며 그리 중얼거렸다. 그 순간 손에 힘이 풀려 미끄러진 휴대폰이 그대로 바닥에 낙하할 뻔한 것을 한유현이 가까스로 받아냈다. 갑작스런 난입에 박예림은 시선을 위로 올렸다. 네가 왜 여기 있냐고 말하는 눈빛에 한유현은 휴대폰을 머리끈 옆에 놓으며 말했다.

 

 

  “약 갖고 올 테니까 먹고 잠이나 자라.”

  “말도 못했는데….”

  “내가 할게.”

 

 

  네가 왜? 하는 의문이 명확히 읽히는 흐린 눈이 곧 눈꺼풀 안으로 사라졌다. 곧바로 나가 구급함을 뒤져 감기약을 찾아낸 한유현은 컵에 물을 받아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뒤통수를 받쳐 상체를 약간 들어 올려 약을 넣어주고 물을 먹여주자 박예림이 고맙다고 흐릿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머리칼의 감촉이나 스쳐간 입술의 열 하나하나가 문신 마냥 새겨질 듯해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대꾸 없이 돌아서는 등에 그 특유의 까끌한 시선이 서리처럼 내려앉는 것 같았다.

 

 

  방에서 나온 한유현은 곧바로 박예림의 아르바이트 처에 전화를 걸었다. 빌라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상가에서 50대 여성이 운영하는 개인 카페였다. 한유진과도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 한유진은 종종 그 카페에서 커피나 간식 같은 것을 테이크아웃 해오기도 했다. 한유현이 그 카페 주인의 연락처를 알게 된 것은 박예림이 그곳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것이 정해질 무렵이었다. 한유진은 예림이가 연락 없이 늦으면 전화해보라며 그에게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혹시라도 그 사람들 찾아오면 큰일이니까, 라고 중얼거리듯 붙인 뒷말의 뜻을 이젠 한유현도 잘 알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한유현입니다. 네, …한유진 씨 가족이요. …아니오, 그런 건 아니고. 박예림이 감기를 심하게 걸려서 못 갈 것 같아 연락드렸습니다. …네, 일요일까지. 네, 수고하십시오.”

 

 

  연락은 간단히 끝났다. ‘박예림의 가족’ 이라는 말은 항상 목에 걸린 듯 나오지 않았다. 아직도 박예림을 이방인이라 생각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한유현은 사고의 흐름을 의식적으로 끊어내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챙겨 넣고 수건을 물에 적셨다. 찬물에 열이 고인 손끝을 식히느라 조금 시간이 걸렸다. 박예림에게서 열이 옮은 것 같았다. 방으로 돌아가니 박예림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몸 아래에 깔린 이불 대신 제 방에서 가져온 이불을 가슴께까지 덮어주고 의자를 끌어다 앉아 조심히 얼굴과 목덜미, 손에 맺힌 땀을 닦았다. 겨우 식힌 노력이 무색하게도 손끝에 또 열이 올랐다.

 

 

  물수건을 거두고 자리를 뜨려다 문득 잠든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자니 새삼 박예림의 여러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겹치고 스쳐가기를 반복한다. 태도를 바꾼 저를 굳은 얼굴로 의심스레 살피던 눈동자부터 작년 제 생일에 주춤거리며 선물을 건네주던 조금 긴장한 턱 끝이나, 안 추운 척하며 살짝 감쳐문 입술, 형의 생일을 축하하며 옅게 웃던 눈매, 졸업식 때 꽃을 내미니 당황하여 추켜진 눈썹, 그리고 제게 생일선물을 받곤 핏기가 옅게 서리던 뺨이라거나. 그는 그 눈동자나 얼굴 곳곳에 열기가 깃든 모습을 특히….

 

 

  “허.”

 

 

  아무렇지 않게 떠올린 생각에 스스로가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그 뜬금없는 자각은 너무나도 사소한 계기를 신호탄 삼아 언젠가 나타난 한여름의 이방인처럼 갑작스레 이지의 장막을 찢고 나와 망설임 없이 그의 뒷머리를 타격했다. 왜? 언제부터? 어쩌려고? 두서없는 의문들과 굳이 알고자 하지 않았던 답이 화살처럼 빠르게 날아든다.

 

 

  지독한 위화감과 거슬리는 간극의 불쾌감도, 변해가는 관계 속에서 손에 쥐었던 이질적인 것이 무엇인지도, 박예림을 가족이라 부르지 않는 전도된 이유도, 그 사늘함을 뒤덮는 열기에 가지던 묘한 충동도, 이따금 닿을 때면 오르는 손끝의 열도.

 

 

  한유현은 명석한 사람이었다. 갑작스런 습격을 당했을지언정 제 감정과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여 걸맞은 이름표를 붙일 줄 알았다. 왜인지, 언제부터인지 따위는 이제 와선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받아들일지 내다 버릴지, 그 이후엔 어떻게 할 것인지. 잠깐의 충격에 어수선한 머릿속을 찬찬히 정리하며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다 조금 흐트러진 앞머리를 살살 정리했다. 만약, 내가 너를 형의 반대편이 아니라 내 옆에 묶어버린다면, 너에게서 이방인의 이름을 뺏고 다른 이름을 떠안긴다면.

 

 

  “너는 어떻게 할래?”

 

 

  답이 돌아오지 않을 질문을 구태여 던졌다. 대답을 대신하듯 톡, 톡 하며 창문을 두들기는 물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한여름의 이방인이 새로이 몰고 온 기약 없는 여름의 시작이었다.

내가 키운 S급들 ┃ 한유현 X 박예림 합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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